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⑥『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문자적으로 볼 때, 맞지 않은 것 같은 애매한
표현이다. 먼저『우리가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이 용서해 주는
방식』이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한다.『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 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내용이 마태복음 14장 14-15절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사해주신 것은 헬라어의 문법이 과거완료 용법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주는 것은 현재진행형으로
되어있다. 시제를 따라서 말하면 앞뒤가 맞지않다.『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있으므로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라는 것은 말이 잘안된다. 그러면『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으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준다』라는 말은 시제상으로 부드럽다. 그런데 우리 말의 번역은 시제상 반대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도『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해주셨지,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사해주고 하나님이 그것을 근거로
사해준다』는 것은 말이 맞지 않는 것 같다.『하나님이 먼저이지, 사람이
먼저』라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에서 100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은, 1만 탈란드 빚진 자의 비유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35절의
말씀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14-15절에서
말하는『사람의 과실을 먼저 용서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신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사람의 용서가 먼저이고, 하나님의 용서는 뒤에 나오는 구조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100 데나리온과 1 만 탈란트 빚 탕감과 관련해서 말씀하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
비유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데, 형제가 내게 죄를 범했는데,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일곱번 정도 용서해 주면 되는지 물었다.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무한정
용서를 해 주라는 말씀이다. 용서를 무한정 해 주어야 되는지 설명하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 18장 23-35절의 말씀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이 1 만 탈란트 빚진 자요, 형제는 100 데나리온 빚진 자라는 말이다. 1 만 탈란트와 100 데나리온은 비교가 안된다는 말이다. 1 만 달란트는 오늘날로
환산하면 10억 달라 정도의 가지가 있는데, 100 데나리온은
노동자 3개월 정도의 월급(수천불 정도)에 해당된다. 십억 달러와 수천 달러의 비교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해서는 무조건 용서를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볼 때, 나는 이미『하나님으로 부터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의 죄 문제는 해결이 된 것이다. 이제 탕감 받은 후에 100 데나리온의 문제, 즉『남을 용서하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만일 1 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가 자기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주지
않으면 1 만 달란트 빚의 탕감은 취소가 되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그 용서를『무효화 한다』는 말씀이지만, 이후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과거에 하나님이 죄를 탕감해 주었던 원래의 위치대로 회복시키겠다는 말이다. 따라서『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지만『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
자가, 잘못을 깨닫고, 남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경우 하나님은
그 자의 죄를 사하여 주신 과거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형제를 사하여 주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고, 하나님이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은 과거형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남의 죄를 용서해주므로 항상『하나님이 나의 죄를 사하신 것이 유효하게 해 주시라』는 말씀이다. 사실
이 말씀은『한번 받은 구원의 역사가 취소될 수 있다』는 말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는『최초에 회개하지 않고 말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참된 회개는『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한 자』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라고 생각해도,
구원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처음 회개했을 때를 돌이켜 보라』는 말씀이다.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구원이 취소될 수 없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회개없이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 외에도『남을 용서하는 것』도 포함한다. 회개하지
않는 자는 그 속에는『남을 사랑할 만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형제의 죄를 당연히 용서해 주어야 한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깨달았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을 남에게도 전해주어야 하는데,『형제를 미워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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